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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소한 일상

[감상문] 밀양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따뜻한 볕)

개 발자국 2020. 6. 3. 10:43

서문

영화 밀양은 보는 내내 주인공 신애의 행동 때문에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던 영화이다. 우리는 이런 답답한 영화를 왜 볼까. 그리고 이 답답함은 무엇일까 ? 답답함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인지하지만, 몸과 주변 상황은 이에 반대로 흘러가고 있을때 일어난다. 나는 밀양을 보며 크게 답답함을 느꼈다. 이는 우리 사회와 영화 속 흐름이 동일하게 느껴지며, 주인공의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본문

이신애 

영화 속 첫 장면은주인공 이신애가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의 고향으로 아들 준이와 함께 새롭게 살림을 차리러 밀양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애가 밀양에 도착하기 전 차의 고장으로 밀양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종찬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종찬에게 견인되어 밀양으로 진입하는 그 모습이 마치 신애가 종찬의 손에 붙들려 오는 것 같다. 

 

그러나 종찬에 따르면 신애가 이사온 밀양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끈끈하게 엮여있는 도시이고 한나라당의 텃밭일 정도로 굉장히 보수적이고 베타적인 지방도시였다. 신애는 그런 시골 촌뜨기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 우승 하지도 않은 대회의 상패를 전시하거나 땅을 보러 다니는 듯 허풍을 떨고 시골 촌놈들에게 대접까지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사람들에게 대접을 해주고 집으로 들어가니 아들 준이가 보이질 않고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 듣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이를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한다. 패닉 상태에 빠진 신애는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만 늦은 새벽시간에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고, 그녀는 종찬의 가게 앞에서 망설인다. '왜' 일까 ... 그녀는 자존심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저울질 하다 결국 종찬의 가게 앞을 터덜 터덜 떠난다.

 

그녀의 민낯  

신애는 범인이 큰 금액을 요구하지만 그녀의 전 재산은 고작 870만원 뿐이며, 모든 행동은 거짓임을 자백한다. 그러나 범인은 평소 행실과 다른 그녀의 실상에 대해서 크게 의문을 가졌지만 수긍한다. 이후 그녀는 전 재산은 범인의 요구대로 전달하였지만 범인은 끝내 준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녀는 신애는 경찰을 찾는다. 이제 밀양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민낯을 알게되고, 종찬 역시 그녀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종찬은 신애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노발대발하고 그녀를 도와주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경찰에게 알린지 얼마 안된 시점. 경찰은 외딴곳에 있는 저수지에서 아이의 시신을 찾았다. 아이의 시신을 확인한 신애는 절망에 빠진다. 이후 범인은 곧 잡혔고 범인은 신애의 아들이 다니던 웅변학원 원장 선생님이였다. 

 

아이를 잃은 어미의 모습을 본 적 있는가 ? 포효와 절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며 범인을 죽여도 시원찮은 판국에 범인의 얼굴을 확인한 신애는 이상하리 만큼 겁을 먹고 그를 외면하고 웅크려진다.. 마치 벌거벗은 나체를 보여주 듯 그녀는 온몸을 범인에게서 회피하며 말이다. 범인은 신애의 그런 모습을 보며 죄책감, 미안함의 감정이 아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 본다.

 

어쩔수 없는 관심종자의 자충수.

 

아이를 잃어 상실감에 빠진 신애는 우연하게 들린 교회에서 울분을 토하며 자신의 마음을 치료받는데 얼마지나지도 않았는데 신애는 밀양에서 제일 독실한 하나님의 신자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매일 기도하고 주일에는 안가던 교회를 간다. 사람들은 신애가 성령을 받았다며 연신 칭찬일색이며, 그녀 또한 어딘지 모르는 온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 이전 까지 그녀가 머리스타일, , 감각, 피아노와 같은 것으로 밀양에서 존재감을 뿜었다면 이제는 신앙심으로 존재감을 뿜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동네교인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가 용서를 해주고 싶다고 폭탄 발언을 한다.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만류를 하지만 신애의 우직하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걱정은 이내 존경으로 심경변화가 일어난다. 

 

범인을 찾아 교도소에 찾아간 신애는 그를 마주하며 어딘지 모르는 편안함을 유지한다. 범인은 신애가 입을 열기 전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신애가 독실한 신자가 됨을 이야기 한다. 범인 또한 자신이 하나님을 알게되어 눈물로 자신의 죄를 빌고, 하나님에게 눈물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신애는 어딘가 얼이 빠진 모습으로 교도소를 나서고 이내 곧 쓰러진다. 

 

그녀는 자신에게 내리 쬐던 햇살은 자신을 이해하고 가엽게 여긴 하나님의 은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따뜻한 은총은 모든이들에게 공평하게 내리쬐던 햇살이였으며, 교도소의 어둡고 좁은 공간에도 밝은 햇살은 그들을 위로하듯 한 줄기 내리쬔다. 이에 그녀는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범인을 먼저 용서해주었고, 자신은 분노도 용서도 할 수 없는 정말 작디 작은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스크린에서 들어나는 신애는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그들보다 훨씬 더 잘나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녀는 항상 무리속에서 무언가 빼어난 능력으로 그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누구에게 지기 싫어하는 듯 약국의 집사에게도 공격적인 말투로 반박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마치 밀양촌것들에 비하면 나는 달라 “, “내가 저들에게 도움을 구한다고?, 턱도없는소리  라고 말하 듯 낮에는 땅을 보러다니고, 동네 아줌마들에게 저녁과 술까지 사주는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콧대 높던 그녀가 자존감이 바닥을 치며 상황이 반전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범인과의 마지막 전화에서이다. 돈을 아낌없이 쓰고 품위있는 생활을 하는 듯 한 신애의 아이를 납치해 돈을 뜯어내려던 범인은 요구한 전 재산이 고작 8백만원밖에 없어 어이없는 듯 계속해서 되묻는다. 그녀는 범인에게 자신은 여지껏 허풍을 떨었던 것이다. 사실은 돈도 이것 밖에 없다. 라며 범인에게 그녀의 모든 속살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존감이 발가벗겨진 채로 범인 앞에 서게 된 것이고 그녀는 범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다시 그녀가 열띤 신앙생활로 인하여 주위에서 인정을 받고 안정되기 시작한 시점 그녀는 자신을 흔드는 가장 큰 자충수를 두었고 그 결과는 악에 받힌 한 마리 짐승 같았다. 

 이 자충수는 하나님의 말씀 중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기독교에서 가장 큰 교범인 자애를 실천하기 앞서 신애 자신이 준비된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신애가 이 자충수를 두기 전 하나님은 많은 메시지를 보냈고 경고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녀의 주변 집사들도 그를 만류하고 담당 목사님 또한 어려운 행동이라 안 해도 괜찮을 것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종찬이 까지도 그녀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며 계획을 철회하길 권유했다. 이와 같이 그녀는 여러번의 구원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감이 아닌 자존심으로 그 구원을 뿌리치고 행동한 결과 그녀는 결국 이성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리쬐는 햇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고 선하다. 누군가가 진실로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발 밑에 무릎을 꿇는 다면 죄를 사하여 준다. 그는 만물을 창조했고 선과 악을 만드신 분이다. 이 말은 누구나 , 선과 악 모두 그의 자식이라는 말이다.   

 

교도소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범죄자의 부모들은 모두 자신의 자식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거나 자식을 대신하여 죄를 짊어 지려고 하고 매일 면회를 가는 등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 또한 영화 속 범인에게 같았을 것이다. 범죄자이지만 자식을 미워할 수 없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눈물로 회개하던 범인에게도 따스한 햇살을 주던 것이다. 

 

독실한 신자 흉내를 내던 신애는 범인이 하나님의 은총과 용서를 받았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비밀스럽게 내리쬐던 햇살

비밀 밀 , 볕 양 이것은 영화의 무대이자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다. 

 

밀양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조용한 햇살, 그녀를 밀양으로 이끌어 준 존재,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간접적인 표현 . 즉 종찬이다. 

 

왜 간접적인 표현일까 ? 바로 그는 그녀에게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옆에서 지켜 봐주며 그녀가 쓰러질 때 마다 다시일어설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애를 견인해서 밀양에 대리고 왔고 그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때마다 진심이 느껴지는 걱정을 해주고 머리를 직접 잘라주지 않고 머리를 자를 수 있게 거울을 들고 있었다. 그는 결국 직접 행동으로 그녀를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닌 진심어린 조언과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그녀가 다시 제 발로 일어날 수 있도록 그녀를 향에 빛을 쬐주고 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을 마법으로 이루어주지 않는다. 원하는 것에 대한 길을 보여줄 뿐이다. 아무리 로또1등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어도 하나님은 이루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을 보여주고 노력에 의한 길을 권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신애에게 내려준 비밀스러운 볕이였다.

 

마무리 :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인가 ? 

 

영화 밀양의 도입부를 보면 넓은 하늘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장면에서는 썩어버리고 쓰레기가 뒹구는 누구라도 밟기 싫은 작은 땅 한 켠을 비추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하늘은 공명정대함을 의미하고 썩어버린 땅 한 켠은 우리들의 좁은 의식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과연 신애가 썩어버린 땅 한 켠을 가짐으로써 앞으로의 생활이 계속해서 시궁창 인생이라 판단할 수 있을까 ?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고 썩어버린 땅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더러움이 씻겨지고 그 땅에 관심을 주면 그 공간은 다시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신애처럼 자신의 자존감이 밑바닥을 보여줘도 언제나 햇볕은 내리쬐고 있다. 그리고 밑 바닥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시작이다. 

 

우리는 항상 하늘을 꿈꾸며 높은 이상을 가지지만 그 곳은 도달 할 수 없는 천공의 영역이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높게 날아도 하늘은 결국 닿지 않으며, 지구의 하늘을 벗어나게 되면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영역이 펼쳐진다. 이곳은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며, 우리가 결코 그 끝에 도달 할 수 없는 공간이다. 신애는 썩어버린 작은 한켠의 땅에서 하늘에 도달하는 꿈을 꾸다 추락하였고, 준비되지 않은 새는 얼마 가지 못해 추락하였다. 

 

영화를 보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악취를 느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시작과 혼자가 아니라는 열쇠를 얻었기에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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